"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과 뇌피셜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들의 사교성은... 현실적인 필연이 아니라,
특정한 정보에 대한 관심만으로 지탱되고 있다.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중 발췌 -
어떻게 오타쿠 소비문화가 진화되었는지,
현 시대의 소비 문화에 대한 변화에 대한 설명이 메인이 되는 챕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통해 설명해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내용입니다.
희박해진 커뮤니케이션 전제를 인위적으로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
커다란 이야기가 사라진 후 서브컬처에 의해 대체를 날조하려는 그 욕망을
미야다미는 '(세계의) 유의미화 전략'이라 부르고 있다.
해당 단락을 제 입장에서 쉽게 해석해 보면
"그것만이 내 세상"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한 욕망이 아닌,
본인들만의 모에 요소와, 그 모에 요소를 소비하는
오타쿠의 "욕구의 세상"은 좁을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동물화 하는 포스트 모던에서 말하는 욕구의 세상은
그들이 소비하는 문화에 따라 특정 모에 요소를 소비하는 동류들과 이어져 있으며,
같이 소비하는 오타쿠들이 소수로 모여있는 점조직 형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던 "욕구의 세상"이, 더 나가서 그 소수의 점조직들은
점들이 모여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며 점점 그들만의 세상을 정말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틀은 "본인들이 속한 조직"이 있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좋아하는 걸 위주로 활동하는 범위는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범위"를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마이너 갤러리"라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그동안 마이너 중에서도 메이저가 아니라면 교류하기 힘들던 서브컬처의 환경이 변화했습니다.
정말 마이너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끼리 모여서 말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열렸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오타쿠의 기본 특성인 인스턴트에 거부감이 없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이제는 그 특성을 통해 "소수의 점조직"들이 교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밈의 재생산"이라는 독특한 인터넷 문화를 통해서 말입니다.
니가 만든 게 좋으면 우리 걸로 만들고
우리 게 좋으면 니들이 가져가서 만들어라!라는
어쩌면 생산과 소비에 거리낌이 없는 특성 또한 확인할 수 있네요.
이번 예시가 바로 대표적인 인터넷 재생산의 예시인 "낡은 창고"님의 이모티콘입니다.
귀엽게 생긴 이모티콘이 타 서브컬처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일단 귀엽고, 따라 그리기 쉽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작권도 자유로운
인터넷 밈의 세계에 이 이모티콘처럼 맛있는 먹잇감이 없다는 겁니다.
위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점조직들은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원본이 되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본인들이 소속된 캐릭터로 치환하여 생산하는
단순히 본인들의 조직 안에서만 생산 활동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는 예시가 되겠네요.
저는 이러한 현상을 2장에서 설명한 "시뮬라크르"의 극한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서브컬처는 타 서브컬처와 다양한 교류를 하게 되면서
과거에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큰 명제였다면
이제는 "그것 또한 내 세상"이라는 관점으로 변화되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저자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하게 됩니다.
바로 그 세상이 이제 정말로 유의미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오타쿠의 행동 방식에 따른 비판뿐 아닌
서브컬처 사용자가 사용하는 "인터넷 문화" 또한 비판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통해 해당 비판을 찾아보자면...
'보이는 것'이 여럿 있는 세계
인쇄된 페이지를 대했을 때 우리는 우선 인쇄된 텍스트를 보고
다음으로 그 의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즉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거슬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
그런데 웹의 세계는 그와 같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보이는 것'의 상태가 확실하지 않다.
~ 환경에 의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
그리고 웹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의 위치도 안정되어 있지 않다.
해당 단락을 제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웹(인터넷)의 정보는 기존의 정보와 달리 실존하지 않는다."로 해석이 됩니다.
상당히 철학적인 이 주제를 우리에게 익숙하게 변환시켜 보자면
"결국 인터넷 정보의 실체는 데이터 쪼가리, 더 나아가면 0과 1이 아니냐?"가 되겠네요.
하지만 인간 시대의 끝이 도달할 것 만 같은 AI 혁명의 2023년에는
저자가 말하는 허상의 세계, 즉 인터넷 또한 더욱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바로 "확장된 플랫폼의 등장"이 바로 그러합니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기의 서브컬처 플랫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은커녕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게 더 일반적이기도 했더랬지요.
하지만 현시점의 "인터넷"은 우리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졌고,
친구를 만나는 시간보다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대의 소비자가 사용하는 "인터넷 문화"의 개념은
과거에 비해 메이저의 영역에 올라왔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터넷상의 단어로 비유해 보자면
과거의 인터넷상의 서브컬쳐의 인식은 "음지"
현재의 인터넷 상의 서브컬처의 인식은 "적당한 볕이 드는 양지"
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서브컬처는 음지에서 생산하지만 양지를 지향한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음지와 양지로 서브컬처판을 구분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과거의 인터넷 서브컬처는 정말 "진짜"들을 위한 시장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해가 안 드는 음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하지만 현시점의 서브컬처는 은근히 양지를 향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가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유튜브"가 한몫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점은 두 번째 등장한 "아이돌"이라는 곡이겠네요.
아이돌을 검색했을 때 가장 잘 나가는 여성 혹은 남성 아이돌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이처럼 서브컬처의 시장은 가장 큰 시장, 플랫폼에서도 슬그머니 스며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만의 세상에서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도약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러한 인터넷 세상에서 서브컬처, 인터넷의 발달은
얼마 전 우리가 겪었던 팬데믹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펜데믹 시절의 OTT 발달과 더불어 떠오른 "메이저한 서브컬처"의 등장과
해당 서브컬처를 퍼트려줄 수 있는 확장된 플랫폼이 한몫을 한 것이지요.
그 덕분에 "음지에서 생산되어 양지를 지향하는"이라는 캐치프라이즈가 완성되었습니다.
게다가 양지에서는 해당 콘텐츠들을 허상이 아닌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곳에서 재생산하는
어쩌면 오타쿠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위 이미지와 같은 "아이돌 챌린지"와 같이
"현실의 인물이 가상의 인물을 따라하는 것을 재생산"이라는 형태입니다.
그동안 음지에서 특정 그룹, 즉 우리끼리 즐기고 놀았던 것들이
이제는 정말 존재하는 것, 즉 다양한 그룹들의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저자가 말하는 "실존하지 않는다!"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기도 합니다.
21세기의 서브컬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기존의 소비 방식과 소비 계층의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명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바로 저자가 말한 "유의미화 전략"을 통해서 말이죠!
인위적으로 세상을 매우기 위해 만들었던 이러한 서브컬처의 대체가
내가 활동하는 세계의 모두가 알고 있게 되었고, 널리 활용되고 있다면
과연 그 대체는 과연 인위적인 대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매트릭스 세계의 예시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세계가 허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는 그 세계가 허상이라는 걸 알아버렸지만
나는 그 세계가 너무 좋다면 그걸로 Ok 아닌가요?
사이퍼의 매트릭스 세상에서 즐기며 살아가기라는 판단이
어쩌면 현시대의 서브컬처 소비자들과 많이 닮아있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하던 그들만의 인위적인 세상에서 즐기고 교류하는 것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서브컬쳐 소비자들에게는 진짜로 유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술 발전을 통한 소비자들의 태도의 변화가 바로
21세기 서브컬처의 진화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저자가 말한 부분에 반박하는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물론 해당 논문이 작성되던 시기와 달라진 현 상황에 맞춘 반박이긴 합니다.
하지만 2001년에서 고작 20년 지난 현재 저 같은 학부생 출신도 반박할 수 있게 된 것은
동물화라고 일컫던 저급한 문화에서 이제는 취미의 일환이 되었다는 반증 같습니다.
다음 포스팅으로 이제 동물화 하는 포스트 모던의 리뷰를 마칠 것 같습니다.
마지막 포스팅은 아마 제 생각을 위주로 작성하는 포스팅이 될 것 같네요.
지금까지는 책을 바탕으로 현시대의 서브컬처를 분석했다면
이제는 앞으로의 서브컬쳐를 예측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다음 포스팅도 열심히 준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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