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과 뇌피셜을 바탕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상류층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낭비적인 활동에 몰두한다.
- 유한계급론 중 발췌 -
호모 사피엔스
: 약 20만 년 전 출현해 현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류" 종
무슨 은행나무도 아니고 이 거대한 행성에서 한 종만 살아남았지만,
그 하나의 종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한 행성의 패자가 되어버린 독특한 종족입니다.
불을 사용하고, 돌을 떼 무기를 만들었으며, 농사하며 사회를 이루고, 철을 단조했으며
더 나아가 산업 혁명을 시작으로 요새는 AI라는 새로운 문명을 발견해 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신기하게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존 폰 노이만이 말했듯이 특이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의 사실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는 20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AI와 대화하며, 화성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기쁘면 웃는 그런 종족이라는 겁니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우리는 문명인 시절보다 야만인 시절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배가 고프면 도시락이 아닌 책을 보며 교양을 먹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현생 인류도 아직까지는 본능에 가까운 무언가가 많이 남아있다 생각합니다.
시간상으로 볼 때, 우리 인류는 아직 신시대의 문물과 행동 양식에 따른 진화가 덜 되었달까요?
진화라는 게 단순히 스타크래프트 저글링 발업 하듯이 기술 발전으로 뿅 하고 되는 게 아닌
행동 양식에 따라 그리고 적자생존에 따라 더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인류를 혹한의 환경에서 버티게 해 주었던 "남는 칼로리를 지방으로 치환하는 유전자"는
현시대에서는 많이 먹으면 그만큼 찌게 만드는, 더 나아가 당뇨 통풍이라는 질병이 되었거든요.
물론 환경에 적응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독특한 특징은 아직까지 우리의 유전자에 남아
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문명,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쉽게 적응하는 건 사실입니다.
활을 오랫동안 쏘아온 궁병은 활시위를 당기는 장골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는 것과
현시대의 인류가 조그마한 스마트폰과 화면을 보느라 거북이를 닮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이만큼 빌드업을 했으면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 봐야겠죠?
저는 지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린 "가장 인간다운 것"에 대한 조건으로
바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야만성"과 "쉽게 적응하는 특성"을 꼽고 싶습니다.
그 두 가지를 통해 설명하기 위해 오늘은 "유한계급론"을 들고 왔구요!
자 그럼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간은 여전히 "노동"을 꺼려한다.
유한계급론에서 말하길 "문명이 발전하며 인간은 육체노동을 꺼리게 되었다."라고 표현합니다.
* 물론 저의 자의적인 견해가 많이 들어간 해석이긴 합니다.
물론 몸이 힘들어서, 업무 진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과 같은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이 육체노동은 야만 시대부터 내려온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원숭이가 돌을 들고 옆 친구의 머리를 때려죽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시점부터
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부리며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맡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잡초 뽑고, 가을이면 추수하는 이 지극히 단순한 생산의 굴레를
더 강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집에서 손가락 까딱이며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강한 자는 타인을 부리며 생산 활동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이 사회 현상이
지금까지 내려와 현시대의 인류는"육체노동은 꺼려지는 것!"이라는 게 유전자에 박혔다는 거죠.
하지만 단순히 육체노동에 대한 저항감만이 생긴 것이 아니란 것에 집중해 봅시다.
바로 "생산 활동에서 제외"라는 이 독특하고도 발칙한 생활양식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산 활동에서 제외를 받은 이 계층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할까요?
기존 야만의 시대에서 이 생산 활동에 제외를 받았던 계층들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이 때문에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맹함"이지 "성실함"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용맹함만 있다면 딸깍 한방에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서
근면하게 씨 뿌리고, 채집하는 행동은 오히려 "약자들의 행동"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이 순간이 바로 단순 노동이 점점 "품위 없는 행동"처럼 보이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이후의 봉건 시대의 귀족, 기사들 역시 "전쟁"과 연관이 많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소집하고, 옆 나라의 침략을 막으며, 본인의 무력으로 사건을 막는
하지만 과거 야만의 시대처럼 전투 자체가 제1의 원칙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이 생산 활동에서 제외되었지만 물려받은 돈과 지위를 사용하는,
말 그대로의 유한계급(leisure class)이 되며 남는 시간을 다른 곳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위한 특별한 의식 도구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거나,
아니면 통치를 위한 법률, 그리고 체계를 만드는 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식량을 위한 육체노동을 사냥이란 이름으로 여가에 사용하기 시작했더랍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나라가 정한 계급도, 신분도 사라진 시대가 다가온 현시대
과연 유한계급은 사라진 걸까요? 아니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까요?!
2. "돈"이 곧 신분이 된 사회 : 도금 시대(Gilded Age)
이제는 더 이상 전쟁과 힘이 지위를 보증해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 바로 "자산"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자본은 이제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낼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꽃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본은 힘과 다르게 물리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보이는 무언가가 부족합니다.
맞으면 아픈 32인치짜리 삼각근과 다르게 맞으면 오히려 기분이 좋을 것 같다랄까요?
그 때문에 이제 자본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보여주는"를 하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바로 필요 없는 것들을 사거나, 사치를 부리는 이른바 "과시적 소비"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명품을 사고, 더 비싼 것들을 구매하며 자본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외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을 이제 자본으로 표현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이러한 소비의 심리 덕분에 베블런은 "베블런 곡선"이라는 이름으로
왜 소비재의 가격에 양극화가 일어나는지 분석하기도 했더랍니다.

금력을 과시하는 시대가 오니 리미티드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하늘 높이 솟아도
오히려 그 명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유한계급들은 손에 넣고 싶어 한다는 거죠.
하지만 제 손가락이 10개이고,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적인 것처럼
이들도 본인에게 소비하는 것 이외의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본인 주위에 있는 것들에게도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다는 거죠.
베블런은 이러한 현상을 "대리 소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전통적인 성별의 역할에 따르면...
전투에 나가는 남성과 집안에서 노동을 맡아하는 여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집에서 일하는 여성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노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자본을 통해서는 집안에서 일하는 처자식 역시 꾸밀 수 있었습니다.
바로 집안에서 대신 노동을 해 주는 하인을 고용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이러한 노동에서 해방된 여성들도 역시 예술과 같은 여가 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사교계에 데뷔하고, 자본을 사용해 열기도 하는 자랑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하인에게도 더 좋은 옷을 입히고, 꾸미며 금력을 과시하기 시작하며
소비를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장식을 추가하는 현상이 발생했답니다.
하지만 혹자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은 생존을 하기 위해 "쉽게 적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시선을 돌리는 것 만으로는 이런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면허증이 없어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하고 다녀도
묵직한 배기음을 내는 람보르기니가 지나갈 때마다 따라가는 어쩔 수 없는 시선부터
소개를 통해 만난 모르는 사람의 첫인상을 평가할 때에도
허접한 옷보다는 명품을 두르고 있으면 몸가짐이 다르게 되는 것까지
결국 돈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는 가격표가 보이게 적응해 버렸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시적 소비"는 이제 적응된 특성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루요.
3. 게임 역시 "야만"과 "과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앞선 빌드업이 왜 이렇게 길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저도 글을 적다 보니 우선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거든요.
특히 야만과 과시라는 파트는 필수적으로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보는 21세기의 거의 모든 게임들은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떠오르는 장르로는 "MMORPG" 장르를 살펴볼까요?
게임 속 캐릭터를 생성하고,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RPG 장르
하지만 그 속에서 행할 수 있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야만이 깔려있습니다.
최초의 MMORPG라고 불리는 울티마 온라인부터 내려오는
유저 간 전투, PVP라는 시스템은 말 그대로 "야만"의 게임화 였습니다.
내가 더 강하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로 적을 죽일 수 있는 이 게임 시스템은
현시대에서 느낄 수 없는 강력한 도파민이자, 과거 야만 시대의 정수라고도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형 MMORPG의 신화 리니지를 살펴보자면 더 극단적으로 치닫습니다.
가장 강한 자가 성을 점령하고, 수수료를 징수하며, 그 수수료로 더욱더 강해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유한계급이 노동 계층을 착취하는 이 익숙해져 버린 구조는
말 그대로의 15세기 봉건주의 시대를 그대로 게임에 옮겨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상위 계층은 공성전, 라인활동 같은 유한계급의 비생산적 활동에 몰두하고
노동 계층은 생산물을 파밍하고 제공하며 말 그대로 그 시대의 계급이 완성되어 있었거든요.
게다가 MMORPG에서 강해지는 방법은 정석적인 "용맹"과 "자본"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바로 확률을 통해 성공과 실패로 가려지는 "강화"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말이죠.

본인의 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이 강화 시스템은
더 높은 단계로 가면 갈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아니 손해를 보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게임 내에서 희귀한 아이템을 강화하기 위해선 더 많은 재료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 강화에 실패하게 된다면 아이템이 사라지는 구조가 많거든요!
하지만 유한계급들은 이러한 것들에 과감하게 강화를 도전하며, 깨트리고, 성공시키며
나는 이러한 압도적인 리스크도 짊어질 수 있다는 "용맹"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평범한 유저라면 이러한 도전이 꿈도 못 꿀, 더 나아가 헛짓거리로 보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이러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도전이 보여주기 가장 적합한 용맹함이니까요.
더 나아가 이러한 리스크의 짊어짐은 용맹함과 더불어 과시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평범한 유저에게는 "헛짓거리"처럼 보이는 이러한 리스크의 크기가
돈 많은 유한계급에게는 한 번의 유희, 사치처럼 느껴진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의 핵심도 결국 인간의 본질을 간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장르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야만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PVP가 메인인 장르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FPS, 익스트랙션 슈터, 대전 격투, AOS 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르 역시 하나같이 "야만"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FPS 장르의 경우에는 오른쪽 상단에 등장하는 "킬로그"와 "점수판"이 대표적입니다.
내가 얼마나 적을 무찔렀는가, 나를 무찌른 적은 누구인가 등을 시각화한 그것 말입니다.

이러한 전광판은 나의 무력을 매칭된 모든 유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이고
더 나아가 나의 기록 역시 소장하여 볼 수 있는 것 역시 특징 중에 하나겠네요.
게다가 "Escape from Trakov"라는 장르는 야만과 자본 두 가지를 모두 잡았습니다.
익스트랙션 장르의 선구자적인 작품이기도 하네요!
타르코프의 경우 PVE와 PVP가 혼재되어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본인이 처치, 그리고 사망에 대한 디테일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사망한 유저는 방에서 나오기 전 어떤 무기, 그리고 어떤 탄환에 당했는지 나오며
심지어 사망한 유저에게서 인식표를 떼 전리품을 챙겨가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사망한 유저의 인식표는 본인의 집에 가져와 장식하거나 교환할 수 있으며
내가 얼마나 용감하고 많은 적을 쓰려뜨렸는 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게다가 해당 작품은 모든 것이 "루블"로 통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투 이후 체력을 회복하는 것부터, 발전기를 돌리고, 탄환과 총을 구매하는 것까지
돈이 없다면 꼼짝없이 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닌 스캐브를 플레이하며 폐지를 주워야 하거든요.
게다가 많은 돈을 투자해 장비를 맞춘 유저 역시 더 고 가치의 장비가 드랍되는 필드로 나아가
더 위험한 적들과 유저들끼리 매칭하며 본인의 용맹함을 과시하는 장치로도 사용하네요.
이러한 구조는 전투에 승리한 용맹한 자는 더 쉽고 빠르게 무력을 보여줄 수 있는 한 편
전투에 패배한 하위 계층은 스캐브 플레이를 통해 품위 없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정말 말 그대로 유한계급을 제대로 보여주는 FPS 장르이기도 하네요.
또한 AOS 장르에서도 이러한 야만의 구성을 "매칭 시스템"으로 구분해 두었습니다.
MMR이라고 우리에게 익숙한 유저 평가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실력을 구분하고
비슷한 실력은 비슷한 실력끼리 매칭하며 구분별로 "티어"를 만들어두는
말 그대로 용맹한 전사에게는 더 화려한 훈장을 붙여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스킨에도 차등적인 가격을 매겨
야만에 더해 자본의 과시적 소비라는 부분에도 집중하고 있는 게 보이네요.

그렇다면 PVP가 메인이 아닌 장르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벗어난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야만"보다는 "자본"의 시선이 더 들어갔을 뿐 바뀌지는 않았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서브컬처 장르를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아름다운 미형의 캐릭터 하나 잘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미형의 캐릭터에 들어간 다양한 시스템이 "과시"라는 부분에 묶여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 부분은 "가챠 시스템"이 되겠네요.
요즘 SSR 캐릭터 하나를 획득하는 확률은 1%에서 0.6%입니다.
쉽게 말하면 100번 도전하면 하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소리네요.
보통 11 연차에 3만 원 정도의 BM을 구성하는 게 일반적이니,
캐릭터 하나를 획득하기 위해서의 기댓값은 한 30만 원 정도 되겠네요.

여기서 이 서브컬처 장르는 "돌파"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하나의 캐릭터를 여러 번 뽑으면 더 강해진다."는 것 말입니다.
여러 번 뽑는 행위를 통해 캐릭터가 강해지는 수치는 그렇게 높진 않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DLC마냥 특정 돌파부터 쓸만해지는 작품들도 몇몇 있긴 하지만요!
여기서 바로 과시적 소비의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등장하면 소위 "풀돌"을 시켜주는 것 말입니다.
풀돌을 위해서는 최소 6~7회 정도 캐릭터를 뽑아야 합니다.
6회라고 가정해도 180만 원 정도의 기댓값을 보여주고 있네요.
물론 180만 원의 과금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캐릭터가 6배 강력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이 사이버 세상에 존재하는 나의 연인을 위해
이 정도의 가격은 투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과시적 소비되겠습니다.
이러한 최애캐를 미국에서는 Waifu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부르는 이유일까요?

게다가 서브컬처 장르이기 때문에 쇼케이스 형식의 대기실 역시 한몫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본 캐릭터의 상태에서는 보여주지 않던 모습들을 돌파가 진행되며 보여주기도 하며
나는 볼 수 있는 것들은 너희는 볼 수 없다는 그 오묘한 야만성 역시 한몫하고 있네요.
또한 나와 친구를 맺은 유저들에게 해당 캐릭터를 "대여"해줄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서포트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시스템이기도 하네요.
도움을 받기 위해 친구창을 둘러보고, 풀돌 된 친구의 애정캐를 빌려 쓰는 과정을 통해
빌려주는 유저는 나의 최애캐, 내 라인업을 보고 알려줄 수 있는 장치가 되며
도움을 받는 유저는 그 화려한 쇼윈도를 보며 부러움을 삼키는 그런 용도도 되겠습니다.
4. 마치며 : 인간다움은 가장 근본적인 것.
21세기를 살아가는 문명화된 인간이라고 자부하는 작금의 시대에서
단순한 유희에서도 우리는 "야만"과 "과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무엇이 가장 인간다운가를 논하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논했습니다.
누구는 이성, 누구는 생각하는 것, 누구는 그 자체라고 평하며
서로가 다른 의견을 냈으며 아직까지 인간다움의 정의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다움을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20만 년 전 태어난 원숭이의 후예.
결국에는 태어나 살아가며 죽는 포유류에 불과한 동물
바로 그 "동물"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말할 수 있겠네요.
법이라는 제도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 기계로 우주를 탐사하지만
그 속에는 아직까지 동물의 본성이 남아있는 기이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른 가치관, 생각을 가지고 존중받고 있는 이 시대에서
유일하게 공유하는 생물학적 특징이기도 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가장 인간다움을 "동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뭔가 상당히 길어진 느낌입니다.
빌드업도 길고, 설명도 길고, 다양한 작품을 건드린 때문일까요?!
하지만 다음 포스팅에서는 인간다운 것 이외에 것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바로 이번 포스팅에서 짧게만 다룬 "운"이라는 독특하고 오묘한 특징 말이죠!
베블런은 운이라는 요소 역시 과시에 사용된다고도 말합니다.
야만의 시대에서 운이라는 것은 화살을 맞고도 살아나는 초자연적인 힘이라 생각했고
그 운이라는 요소는 단순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인과에서 벗어난 것이라 표현했거든요!
과연 이 운이라는 요소를 게임에서 어떻게 녹여냈고,
그 운이라는 요소를 우리는 어떻게 체감하는지 분석해 보며
게임에서 녹여낸 사례들 까지 찾아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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