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뇌피셜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봐.
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
- 올드보이, 2003 -
지난 포스팅은 유한계급론을 바탕으로 게임이라는 장르를 분석해 봤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기존의 시스템을 유한계급론에 끼워 맞춘 것처럼도 보이지만,
기존의 게임 시스템 자체가 저는 인간의 본성에 맞춰 제작된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산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산업이잖아요?!

미디어 철학을 공부하며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이 저는 기억이 납니다.
"Play"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발전했고, 시대에 따라 앞에 붙는 단어들이 바뀌어왔다고 말이죠.
고대 시대에서는 영웅의 서사시를 다룬 연극에 Play라는 동사가 붙었고,
이후 시간이 지나며 Play는 연극은 오페라, 그리고 상영기의 발달로 영화까지 이어졌고
각종 스포츠와 음악,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것까지 Play라는 동사가 붙기 시작했네요.
그렇기 때문에 이 Play가 붙은 장르에는 무언가 "매혹적인" 부분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바로 해당 장르를 즐기는 이들에게 "재미"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도파민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 이 Play의 범위의 확장은 결국 "얼마나 도파민을 채워주는가"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재미있게 봤던 영화 "올드보이"의 명대사로 포스팅을 열어봤습니다.
오달수 씨가 최민식 씨의 이빨을 뽑으려는 장면에서 했던 대사이기도 하죠.

제가 현시대의 게임에서 가장 크게, 그리고 쉽게 도파민을 뽑아낼 수 있는 장치인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에 대한 설명을 가장 빠르게 납득시켜 주는 라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를 게임에서는 "운"이라고 표현하고 있구요!
왜, 그리고 어떻게 게임에서의 운이 우리에게 도파민을 만들고 그리고 느끼게 만들까요?
다양한 이론과 그리고 실제 게임들을 통해 조금 더 딥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입/출력의 무작위성 : 랜덤이 만드는 과감함
운을 메인으로 만들어진 게임은 예로부터 존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갬블이라고 불리는 도박이 그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포커 장르 중 하나인 홀덤을 들어볼까요?
딜러가 패를 섞고, 나에게 나누어주는 두장의 카드 역시 운의 요소이며,
이후 공용 카드 5장을 통해 족보가 완성되는 것 역시 운의 요소입니다.
이러한 고전적인 갬블류 게임은 운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의 시스템 자체가 운의 요소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런 유의 게임에서 낮은 확률에 기대하는 건 "리스크"라고 표현하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낮은 확률을 뚫고 이기는 데에서 나오는 도파민이 가장 큰 재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시대의 게임에서의 운은 이런 단순한 리스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무작위성"이라는 부분에 집중한 독특한 형태가 바로 게임에서의 운이거든요!
저는 게임에서 느껴지는 이 무작위성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키스 버건이 주장한 "입력 무작위성"과 "출력 무작위성"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을 통해서 말이죠.
KEITH BURGUN GAMES
Official Site of designer Keith Burgun
keithburgun.net
키스 버건의 게시글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해당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
그는 무작위성이 단순히 예측 불가능한 "운"으로 치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무작위성이 플레이어의 의사결정 시점을 기준으로 성격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점에 따른 구분이 바로 입력과 출력인 셈이죠!!
우선 입력 무작위성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이 부분에 해당하는 운은 플레이어의 의사결정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무작위성입니다.
한 마디로 "문제가 생성되는" 방식에 해당하는 무작위성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이 입력 무작위성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근하게 숨겨져 있는 시스템입니다.
의외로 랜덤성이지만, 랜덤성이라고 잘 느껴지지 않는 요소이기도 하죠.
로그라이크 장르에서 매 번 달라지는 몬스터의 종류와 맵의 구성이 대표적입니다.
원류가 되는 작품 "로그(Rogue)"의 절차적 맵 생성 구조가 바로 이러한 입력 무작위성의 대표적인 예시죠!
문명과 같은 시뮬레이션 장르의 첫 위치, 마인크래프트의 첫 생성 위치인 시드값 역시
입력 무작위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유저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유희왕, 하스스톤과 같은 TCG/CCG 작품에서도 입력 무작위성은 존재합니다.
바로 "첫 핸드에 들어올 카드"를 유저가 조종할 수 없다는 것도 입력 무작위성으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저는 이러한 유저가 간섭할 수 없는 랜덤성 역시 게임의 한 재미와 메타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통해 유저들에게 "어떻게 플레이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죠.
이 불합리한 시드 속에서도 본인만의 창의력을 통해 온몸 비틀기 하는 것 역시 유저의 재미가 되며,
어쩌면 이 불합리한 무작위성을 유저들은 게임의 한 요소라고도 생각하게 되는 게 재미있는 점입니다.
특히 TCG류 장르에서도 이 불합리함을 오히려 전략의 한 요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덱에 벨류 좋은 한 장의 카드가 오히려 첫 핸드에서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첫 핸드에서의 좋은 가성비 카드는 결국 후반부 뒷심 싸움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며 플레이어는 덱을 짜고, 수를 생각하며 플레이의 방향성을 고려하게 됩니다.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순수한 무작위성이 플레이의 핵심 전략의 한 요소로도 작용하게 되기도 하네요.

출력 무작위성은 정확하게도 입력 무작위성과 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적용되는 무작위성이기 때문이죠!!
앞서 설명한 입력 무작위성처럼 표현하자면 플레이어의 의사결정 이후에 진행되는 무작위성이겠네요.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게임에서 생각하는 운적인 요소가 눈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유저의 의도(Input)에 따라서 결과(Output) 사이에 개입하는 '노이즈(Noise)'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여기서부터 우리는 이 운이라는 요소를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이 발생합니다.
바로 "내 선택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단" 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XCOM의 "공격 성공률"을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XCOM의 공격 성공률, 밈으로는 "감나빗"이라 표현하는 이 요소는 참 오묘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전략을 짜고, 대원들을 배치하고, 가장 좋은 포지션을 찾아 외계인을 포위한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귀신에 씌인 것처럼 공격에 빗나가면 전멸하기 일쑤인 요소이거든요.
또한 요즘 다시 핫해지고 있는 장르 "발더스 게이트"의 원종 "D&D(Dungeon & Dragon)"를 살펴보자면...
나의 판단이 결국에는 주사위를 굴려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한 마디로 이 출력 무작위성은 앞서 말씀드린 "순수한 운"과 관련 있다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요소이기 때문에 더 강한 도파민, 더 강한 자극을 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높은 확률로 실패하여 소위 "억까"를 당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의 활로를 찾을 수 없을 때 도전하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개념으로도 사용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출력 무작위성, 즉 "보이는 확률"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파고들고 싶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보이는 확률은 플레이어를 플레이를 제한하는 요소처럼 느껴지거든요.
왜 저는 이러한 보이는 운, 즉 가시적 확률은 왜 플레이를 제약한다고 만든다고 생각할까요?
다음 꼭지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확실하게 정리하여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2. 가시적 확률 : 왜 숫자는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까?
우리는 확률이 눈에 보이는 순간 인간의 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손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앞선 예시로 들었던 작품 "XCOM"을 다시 한번 꺼내오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대원을 움직여 몬스터를 명중할 확률이 80%라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과연 성공 확률 80%라는 부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확률, 하지만 그 비어있는 20%의 실패율이 우리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이 공격이 실패한다면 일어날 나쁜 상황들에 대해서 우리는 상상하기 시작한다는 거죠.

앞서 말씀드린 20%의 확률은 우리에게 아주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바로 플레이어에게 심리적 기대치와 통계적 현실 사이에 거대한 괴리를 만드는 역할 말이죠!
20%의 확률이라면 5번 중 한번 일어나는 어쩌면 흔하게 나올 수 있는 확률입니다.
하지만 이 불쾌한 경험을 우리의 뇌는 플레이 도중 발생하는 "불합리한 사건"으로 인식합니다.
게다가 XCOM이라는 게임 특성상 성공했을 때 적을 처치해 얻는 이득보다는,
공격에 실패했을 때 거의 확정적으로 죽는 요원들이라는 특성 역시 존재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행동경제학의 손실 회피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손실회피는 즉 인간은 이득보다는 손실을 더욱더 크게 느낀다는 이론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XCOM에서의 공격 성공률은
단순히 80%의 "적을 무찌를 확률"이 아닌, 20%의 "내가 키운 요원이 죽을 확률"로 해석된다는 거죠!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확실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근접무기, 또는 폭탄을 사용합니다.
빗나갈 확률이 없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100%의 대체제를 선택한다는 거죠.
이 때문에 완벽하게 적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들은 제한이 존재합니다.
한 번의 플레이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던지, 위치에 따라 대미지가 감소하는
말 그대로의 "결국 영원히 기댈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라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거든요.
또한 유저들은 이러한 확률이 직관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는 "분석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다음 방에 50% 확률의 함정이 존재하는 방이라는 정보를 유저에게 전달한다면
그 순간부터 플레이어는 전진이라는 목표에서 최적의 수를 찾기 위해 계산 모드에 들어가거든요.
한 마디로 필요한 정보이긴 하지만, 그 정보 때문에 플레이어가 "마비" 상태에 들어간다랄까요?!

이러한 현상을 보드게임에서 분석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많은 정보를 취합하고 그중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본인의 턴을 넘기지 않는 유저들 말이죠.
이러한 현상은 게임의 템포를 늦추고, 같이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해당 플레이어가 갇혀있을 지식의 저주는 타인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바다 아닐까요?
이렇게만 본다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보이는 확률"은 단점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게임의 템포를 늦추고, 과감성을 줄이며, 결국에는 불쾌함으로 남는 존재처럼 느껴지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레이어에게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옳은 방식일까요?
해당 물음에 대해 엘스버그 역설을 통해 조금 더 깊게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3. 결국 플레이어도 인간 : 엘스버그 역설에 대한 게임의 반박
경제학에 "엘스버그 역설"이라는 유명한 행동경제학 이론이 존재합니다.
대충 정리하자면 인간은 아는 위험보다는 모르는 모호성을 더 싫어한다는 말이 되겠네요.
대표적인 예시로 "공 뽑기 사고실험"이 있습니다.
각각 100개의 공이 들어있는 두 항아리 A와 B가 존재합니다.
항아리 A에는 빨간 공과 검은 공이 50개씩 들어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지만,
항아리 B에는 빨간 공과 검은 공이 어느 비율로 섞여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한 번 뽑을 때 빨간 공이 나오면 두 배를 준다!"는 갬블을 진행하고
베팅에 도전할 사람들에게 어느 항아리에 배팅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률을 알 수 있는 A 항아리에 배팅을 한다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A 항아리의 비율을 3:7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50%의 확률이 30%로 낮아졌다면 사람들은 B 항아리로 배팅을 바꿀까요?
결과는 그래도 확률을 알고 있는 A 항아리에 배팅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결과에 확률을 부여할 수 없는 상황을 본질적으로 싫어하며,
이 때문에 불합리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확률이 보이는 쪽에 배팅한다는 거죠!
이러한 논리라면 게임에서의 확률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도와주는 역할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을 보여주더라도, 아예 확률을 보여주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하지만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저는 게임에서의 보이는 확률은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낳는다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러한 핵심 플레이와 연관이 있는 부분들은 보이지 않게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러한 이유를 "낙관적 편향"과 "플레이어의 선택"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상상할 때 낙관적 편향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미래는 조금 더 과대평가하고, 부정적인 미래는 과소평가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편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정보가 적어야 합니다.
그래야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순수하게 "미래"라고 믿게 만들 수 있거든요.
저는 이러한 예시를 서브컬처 장르에서 "가챠"를 예시로 들고 싶습니다.
우리가 픽업 캐릭터가 나오기 전 두근거리는 이유가 뭘까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잔뜩 섞은 미형의 캐릭터가 나와서?
아니면 내가 맞추고 있는 덱의 마지막 파츠를 완성할 성능이라서?
저는 단순하게도 "10연차에 바로 먹고 졸업하는 상상"이 주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트럭을 가져다 박아도 못 먹고 폭사하는 일이 분분한 세상에서
나는 딸깍 한두 번으로 뽑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는 상상을 하는 것 말입니다.

인터넷 용어 "비틱"이 유행을 타고, 고유명사가 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만 하던 긍정적인 미래를 실제로 만들어 남들에게 사례로 보여줌으로써
남들에게는 배아픔을, 본인에게는 도파민을 만족시켜 주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거든요.
분명 가챠의 확률은 공개되어 있는 정보이지만, 가챠 화면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눈을 가리고, 너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믿음을 유저에게 심어주는 것이죠!
게다가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상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장치에 불과하지만
누군가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고 유저들의 행동을 과감하게 만드는 것이
저는 이 보이지 않는 확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도파민이자 재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낙관적인 편향은 더 나아가 "플레이어의 선택"을 통해 강화가 됩니다.
앞선 낙관적 편향은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챠라는 시스템을 큰 틀로 잡고 설명을 드렸지만
이 플레이어의 선택은 다양한 게임에서 사용하는 메인 시스템에도 적용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모두의 마블과 같은 온라인 보드게임에서 "주사위 던지기"를 예시로 보자면
이 게이지의 실선을 잘 맞춰 던지면 뭔가 원하는 숫자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죠?!
분명 주사위 굴리기와 같은 완전한 랜덤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시스템이지만
내가 선택해서, 내가 굴리면 뭔가 다른 미래가 나올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포켓몬스터를 예시로 들자면 "상태이상"을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해당 게임에서 혼란/감전/수면과 같은 턴을 스킵하는 형태의 상태이상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마칠 때 상태이상을 무시하거나, 해제하는 고정된 확률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유저는 그 상태이상이 몇%의 확률로 무시하거나 해제되는지 알지 못하고
제발 제발 하면서 기도하고, 그 기도가 맞았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게 제법 맛이 난단 말이죠?
이러한 희열을 오히려 보이지 않게 설정했기 때문에 게임의 맛을 더하는 장치가 되었고
오히려 교체라는 선택이 아닌 과감하게 공격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마비가 25% 확률로 내 행동을 못하게 막는다고 알려주고,
헤롱헤롱 상태에 걸린 내 포켓몬이 50% 확률로 행동을 못한다고 알게 된다면
과연 플레이어들이 매 턴 이렇게 과감하게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4. 마치며 : 무지(無知)는 환상(幻想)을 만든다.
저는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맨 처음 게임에서의 Play라는 개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Play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도파민을 채워주는가?"라고도 말씀드렸죠.
그 문장은 결국 해당 콘텐츠가 얼마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가?"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때문에 Play의 개념이 점점 더 확장되었고 커져나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음유시인들의 이야기와 연극은 우리에게 상상 통해 재미를 만들어 주었지만,
같은 이야기만 듣게 된다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지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이제 노래와 함께 즐기는 연극, 오페라 장르가 떠올랐고
더 나아가서는 화려한 무대와 빠른 템포의 뮤지컬이 등장하게 된 이유랄까요?
이 때문에 새로운 장르의 Play는 항상 키치한 문화로 취급받았습니다.
문화의 메인 스트림에 편승하여 발생한 저급한 문화라고 말이죠.

그 때문에 뮤지컬도, 영화도, 게임도 맨 처음 등장했을 때 평가가 절하된 것 같습니다.
상류층이 즐길 고급문화가 아닌, 시간 때우기 용으로나 사용할 법한 문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온 이 게임이라는 장르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연극, 오페라, 뮤지컬, 영화와 달리 "보이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합쳐진 독특한 장르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자면 영화의 Play와 스포츠의 Play 동시에 즐기는 하이브리드의 형태랄까요?!
이러한 특징 덕분에 게임에서는 "유저의 선택이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미래가 바뀌거나, 더 나아가 실패로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그 선택까지도 Play의 연장선이자, 재미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유로움이거든요.
이러한 선택의 자유로움을 만드는 것이 바로 플레이어에게 보이지 않는 확률이자
이 특징이 바로 게임 플레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의 정수를 극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꼭지의 제목인 "무지가 환상을 만든다."라는 타이틀이 가장 잘 요약한 것 같네요.
알수 없다는 것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닌 희망이자 재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며, 한 땀 한 땀 리스크를 관리하며 살고 있는 어른이들에게
게임에서라도 자유로움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게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목적인 것 같습니다.
게임에서 실패 좀 하고 지면 좀 어떻습니까?
재밌으면 그만이지?!!
작년에 시작한 포스팅이 올해 1월 중반에 들어서야 완성하게 돼버렸습니다;;
뭔가 200회 특집이다 보니 이것저것 살펴보며 다양한 자료를 조사하려다 보니
책도 사서 읽어보고 영어로 된 사이트도 찾아가 번역하며 읽다 보니 많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꼭지를 정하고, 글을 작성하다 보니 점점 감이 잡히는 게 재미있고
결국에는 끝맺음을 통해 과거 공부했던 걸 복습하고 결론을 내린 게 뿌듯하긴 하네요.
특히 AI 시대에 대항한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작성한 글이긴 한데
뭔가 불완전하다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 오히려 인간답다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이라는 키워드 자체에 집중해 본 게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은 얼마나 잘 짜였는가, 얼마나 잘 팔릴까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면서는 뭔가 근본에 다가간 느낌이랄까요?!
물론 포스팅에 대한 결론은 매우매우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포스팅 업데이트에는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수 시절처럼 짬짬이 글을 쓰던 버릇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그런 걸까요?
퇴근 후 오늘은 블로그를 써 봐야지라고 항상 상상하지만
집에 와 밥 먹고 유튜브 보며 게임 몇 판 하면 지쳐 곯아떨어지는 요즘입니다.
다음에는 더 빨리 그리고 재미있는 작품 분석으로 다시 한번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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